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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09.
   magazine 싱글즈 1월호 : 서른이 된다는 것 - 내 사이즈는 55이지만 내 사이즈는 66사이즈


내 사이즈는 55이지만 내 사이즈는 66이야.


81년생이니까 이제 서른넷이다.
4년 전을 떠올려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다. 고작 4년 전 일을 생각하면서 노인네가
처녀 적 떠올리듯이 가물가물 더듬더듬거리고 있다. 오히려 서른 살에 비해 스물아홉 때를 떠올리는 일이
확실히 더 또렷한 감이 있다. 그래봤자 그것도 단편적인 것들이지만.
이를테면 이제 일 년만 더 참으면 서른이다, 하고 생각했던 새해.
나이를 밝혀야 할 때마다 스물아홉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제 내년에 서른이 돼요, 하고 말했던 것.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잉에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를 펼쳤다가 세장 읽고 그만둔 일,
서점 같은 데 갔다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발견하게 되면 언제나 의미심장한 눈길로 그윽하게
표지를 바라보곤 했던 일,
누군가 [설운 서른]이라는 시집을 선물해 주었을 때 순전히 서비스 차원에서 심술을 엄청 부려주고 집에 오자
마자 재미나게 읽었던 일도.
나는 서른 살을 기다려온 쪽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본능적으로 나의 이십대가 어땠는지 어렴풋이 감 잡을 수 있게 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 서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십대를 상대로 피해
자 코스프레를 한다.
\'나는 나의 이십대에게 정말 많은 상처를 받았어. 어서 서른의 세계로 도망치고 싶어.\'
내 얘기다.
요의를 느끼는 사람이 가장 참기 힘든 순간은 화장실 문 앞이다.
나도 서른의 코앞 스물아홉의 밤, 그 밤마다 이부자리에 조용히 누워서 고분고분 천장을 바라보며
발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다가 잠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결국 서른이 되었을 때, 참 좋았다.
처음에 얘기했지만 서른 살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냥 좋았고, 음, 그러니까, 약간 66사이즈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체형이 55사이즈니까 55를 입는 그런 당연한 시절, 그런 당연하고 지긋지긋한 시절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좋았다. \'내 사이즈는 55사이즈이지만 내 사이즈는 66사이즈\'라는 모순적인 문장이 내 것이 되어서 좋았다.
그렇게 좋고, 그리고 끝이다.
원래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더 재미있고 아듀, 아듀 하면서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일어난 새해 아침
이야말로 그렇게 심심할 수가 없다. 스물아홉 내내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고 맞이한 나의 서른은 참 좋았는데,
그게 다다.
아마 반대로 서른을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사람도 잠깐 끔찍하고, 그리고 그게 끝이지 않았을까.
스무 살, 서른, 마흔 파티션을 착착 나누고 거기에 열심히 의미를 부여해보지만 사실 그게, 그 거창한 의미라는 것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잠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른\'이 당신에게 주는 것은 아주 잠깐이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