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 10. 12.
시란 무엇인가. 두둥. (\'칠판에 적힌 시 한편\' 에 기고한 글)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의 자랑스러운 과거가 지금 막 생각이 났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교내 백일장에서 시 부문으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학교 다니면서
상이라는 건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허허벌판 민둥산 같았던 내 학창시절에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는 나무 한 그루가 늠름하게 자라고 있었을 줄이야.
나는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서 뭐라고 한마디 쓰기도 전에
이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감동에 젖어 있었다.
만약 이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시인의 자질이 충분했다는 사실을 기억 못한 채
일생을 불행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평소 노래를 만들 때 멜로디를 만드는 것보다
가사를 쓰는 일에 몇 배 더 공을 들이는 것도
다 시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겠지,
심지어 학창 시절 누군가와 다툴 때에도 나는 활자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했는데
(말싸움대신 편지를 전해주는 식이었다. 아마 그 편지들을 뜯어보면
이런 것들이 적혀있을 것이다. \'네가 그때 분명히 나한테 삼천원을 빌렸잖아.
그런데 어제 떡볶이 사 준 걸로 갚은 셈 치자고? 이천원어치 먹었는데?\')
그것도 나의 문학적인 기질 때문이었을거야,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한참을 삼천포로 빠지다가
지금 힘겹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암튼, 어째든, 이 글을 쓰게 되어서 기쁘다. 참 많이 기쁘다.
그 시절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면
그때 나는 \'해\'에 관한 시를 썼던 걸로 기억한다.
해를 의인화해서 \'그녀\'라고 설정해 놓고
그녀는 아침에는 이렇고 점심에는 저렇고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고..
그런 식의 시였던 것 같다
(거듭 밝히지만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아무튼 그 시로 상을 받았다. 장려상인지 입선인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대상, 금상은 아니었고 무슨 상인지 구체적으로 밣히기보다
두루뭉술 그냥 상을 받았다,라고만 하는 게 왠지 더 그럴싸해 보이는,
그런 별 볼 일 없는 상이었다.
그런데 새삼 지금 제일 궁금한 것은 내가 지었던 시의 전문도, 그 상이 정확히 무슨 상이었는지도 아니고,
과연 그 시를 지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이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 그 시절의 나에게 시란 무엇이엇을까.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가 필요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부끄러워하면서도 왜 그렇게 시를 써주고 싶고 노래를 불러 주고 싶은 걸까.
시를 써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다들 연애하면서 러브레터라는 것을 써 본 적이 있을 텐데,
자세히 보면 편지라고는 해도 시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을 것이다.
논리적이지도 않고(난 네가 좋아. 그냥 다 좋아),
괜히 비유하고 싶어지고(너는 마치 제주도에만 사는 자그마한 핑크 빛 조랑말 같아),
말하려다 말고(있잖아.....아니야 아무것도!).
우리는 비단 사랑만이 아니라 슬픔 앞에서도 역시 시를 찾게 된다.
내가 처음 곡을 만들면서 썼던 시(가사)는 몇 년 전 사고로 잃은 내 동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사고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머릿속에는 동생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괴로움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다.
밤에는 잠을 못 이루고 낮에도 깨어 있는 것 같지 않은 고통스러운 나날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녀를 이제 나는 어디에서 느껴야 하나, 눈앞이 캄캄하던 시절. 나의 첫 가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결국 시를 쓸 수 있는, 그리고 시를 읽을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라는 것은
사랑이든 슬픔이든 무엇인가로 인해 우리의 가슴이 터질 것처럼 차오를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음속이 사랑으로 꽉 차고 혹은 슬픔으로 꽉 차고, 말하자면 인생이 선사해 주는 희노애락의 하나로 꽉꽉 차올라
그것이 완전히 100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시적인 인간\'으로 변하여
저절로 손을 뻗어 시를 찾게 되고 시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별반 다를 게 없으며,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다시 말하면 \'당신은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같은 게 아닐까.
\'더 놀고 싶은데 해가 떨어지면 엄마가 집에 들어오라고 하기 때문에 나는 햇빛이 좋아\'라는
되게 무식한 발상에서 비롯된 시였을지도 모르지만,
해에 관한 시를 꼬물꼬물 쓰던 그 시절의 내 작은 가슴 속에는 햇빛을 향한 애정이 꽉 차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햇빛을 \'정말\' 사랑한다.
해가 긴 여름날에는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다음날 꼭 일찍부터 일어나
아침 빛으로 가득 찬 방을, 그 방 안을 떠도는 먼지 같은게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하는 것이다.
무엇으로든 자신의 마음을 백 퍼센트 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더 그렇다.
어릴 때는 누구 하나를 좋아하면 엄마 아빠보다도 더 좋다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는데,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이게 돈이 되는 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그저 달려들기 바빴던 것 같은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가슴으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에 자꾸 반문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을 진짜 사랑하는 걸까, 이 일을 계속 해도 될까, 이렇게 계속 슬퍼하고만 있어도 되나.
심지어 마냥 행복에 젖어 있기보다 이 행복이 깨지진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을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이것저것 따져 보는 것을 보통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똑똑하고 어른스럽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바보 멍청이 해삼 말미잘 같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 앞에서, 행복 앞에서, 슬픔과 고독 앞에서 마냥 머뭇거리기에는 여러모로 아까운 것이 많다.
파도처럼 당신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들을 그저 기쁜 마음으로 맞자.
그것이 행복이건 슬픔이건 그것으로 당신의 가슴을 한가득 채우고 비워내고 또 가득 채우고.
그러면서 매일매일 \'시적인 인간\'으로 살면 참 좋겠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그 시들을 친구로 삼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